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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정’보다 ‘비전’을 선택했다 - 최갑도 소장

나는 ‘안정’보다 ‘비전’을 선택했다


배움연구소 소장  최갑도


계속 꿈을 꾸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라!

비전은 인생의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제거하고 즐거운 삶, 보람 있고 자신감 있는 삶으로의 전환을 도와준다. 한번 밖에 없는 내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정하고, 비전을 확실하게 이루도록 지렛대 역할을 하는 원동력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공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안정보다 더 큰 ‘비전’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력에 도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직업군인 기술행정부사관은 안정된 직업이었다. 월급과 숙식도 제공 돼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제법 인정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평생의 한이었던 공부가 하고 싶었다. 대학진학은 나에게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전역을 했다. 그리고 1급 자격증으로 입학시험을 볼 수 있는 창원기능대학 시험을 응시했다. 비전을 향해 밤잠을 줄여서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안타깝게도 창원기능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꿈에 부풀어서 사력을 다해서 준비했는데 대학시험에 떨어지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적지 않은 나이 30살 되었고 먹고 살길도 막막했다. 살아있을 의미를 못 느끼는 힘든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유교경전에 ‘궁즉통’ 이란 말이 있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최갑도, 이대로 끝날 것이냐? 넌 누구보다 강하다! 할 수 있다!” 그래!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그래서 중학과정, 고등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모두 합격한 후 그 해 12월에 기능대학에 응시했다. 그리고 창원기능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에 전해지는 꼽추왕자 이야기가 있다. 페르시아에 똑똑하고 성격이 좋은 왕자가 있었다. 그는 모든 부분이 거의 완벽했지만 단 하나 꼽추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왕은 왕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왕자에게 모든 선물을 다 해줬다. 그리고 왕자의 10살 생일 날, 왕은 왕자에게 선물로 무엇이 갖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왕자는 등을 제대로 편, 자기 동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왕은 왕자를 측은해하며 결국 동상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10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왕자가 동상의 모습처럼 등을 제대로 펴게 된 것이다. 왕자는 동상을 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다. 이렇게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법시험에 도전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하니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했다. 기숙사 사생장을 했을 정도로 학교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현장실습 때 인정을 받아서 현대자동차 서비스에 취업했다. 군대생활을 힘들게 하다 보니 직장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내 안에서 뭔가 자신감이 계속 생겼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그래, 계속 공부를 해보자. 공부가 내 적성인지도 몰라. 내친김에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법관이 되어보자.’ 이런 생각을 하고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법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열심히 다녔다. 어떻게 보면 과감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결정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막 사표를 냈을 당시 아내와 신혼생활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이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줬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아내가 임신을 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장으로서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취업을 권유했다. 결국 나는 취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대학 교수님의 소개로 기아자동차에 취직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비전 ‘선생님’ 도전

입사 후, 열심히 근무하던 중 사내직업훈련원에서 사내 강사 제안이 들어왔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던 사람이 이제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정말 감격스럽고 벅찬 일이었다. 그때는 일본 마쯔다 자동차연구소에 엔진 담당자인 내가 3개월간 연수를 가기로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회사 입장은 일본 마쯔다 연수는 다른 사람이 가도 되지만 직업교육 과정을 맡아서 진행하려면 훈련교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필요했다. 마쯔다 자동차연구소 연수는 엔진 담당자인 나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일본 유수의 자동차 기업에서 기술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분명했다. 하지만 강사는 내 비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배움과는 거리가 멀어지자 완전히 포기했던 꿈이었다. 연수를 가면 승진이 보장됐지만 나는 비전을 택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모든 기회는 불확실함과 위험 속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곳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확실하고 안전한 곳에는 기회가 없다. 위험과 불확실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나에게 기회라는 것이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사내훈련원으로 들어가 강사 업무를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꿈만 같았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드디어 강단에 선다는 설렘을 안고 사내 직업훈련원에서 강사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강의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공지식과 기술은 머릿속에 충분히 있는데, 이 내용을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논리적으로 얘기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초반에는 강단에 설 때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후들후들 떨렸다. “어린 교육생들 앞인데 왜 이렇게 떨릴까요? 일이 적성이 안 맞는 건 아닐까요?” “무슨 소린가. 지금은 베테랑 강사가 된 사람들도 처음 대중 앞에 섰을 때는 대부분 떨었을 거라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걱정하지 말게.” 주변 사람들의 위안과 지지를 받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옛말에 세상살이 가운데 힘든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같이 살기 싫은 사람이 자꾸 함께 살자고 매달리는 것이고, 두 번째가 나무에 올라갈 때 나뭇가지를 잡고 거꾸로 올라가는 것, 세 번째가 청중 앞에 서서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세 번째 힘든 일에 도전한 것이다.
사무직 도전

몇 년 후 회사에서 기술직무 강사들은 사무직으로 전직하라는 통보가 왔다. 전직을 하기 싫으면 무조건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사무직으로 옮기는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전직을 하게 되면 급여가 20% 정도 줄고 사무직군에 맞는 인사고과 평가도 받아야 한다. 현장에서 근무하던 나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서 기술 담당 강사들 중 90% 이상은 모두 현장으로 복귀했다. 나이도 많았고 인사상의 불리함이 있었지만 나는 전직을 택했다. 원하는 길을 가라는 아내의 지지 덕분이었다.

호텔왕 콘래드 힐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호텔 종업원으로 일할 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미래를 생생하게 그리지는 않았어요. 노력이나 재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성공을 꿈꾸는 능력 즉 ‘비전’의 설정 입니다.” 그렇다. 아주 잠깐 꿈을 꾸는것은 쉽다. 하지만 그 꿈을 꾸준히 꾸고 노력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노력도 재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삶을 바꿔주는 것은 비전이다. 나는 계속해서 꿈을 꿨고 비전을 향해 나아갔고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최근 현대·기아차그룹은 청년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컨소시엄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직업교육 컨소시엄이란 훈련이 끝나면 협력사인 중소기업에 취업을 시켜주는 청년취업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교육이 다 끝나면 교육생들은 반드시 취업상담을 하게 되어있다. 상담 때마다 나는 꼭 이 질문을 한다. “교육 많이 시켜주는 회사와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있습니다. 어느 쪽을 지원하고 싶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월급 많은 쪽이…….”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후자를 원한다. 그러면 나는 질문을 바꾸어 교육생들에게 묻는다. “자,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죽기 전에 충분히 벌지 못한 돈이 생각날까요? 아니면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이 생각날까요?” 이렇게 죽기 전에 무엇을 더 후회하겠냐고 묻는다. 나는 이 질문에 전자를 답하는 사람을 아직 단 한 명도 본 일이 없다.

새로운 비전 ‘기업교육 최고 명강사’

나는 어린 시절 선생님의 꿈을 사내 직업훈련원 강사로 바꾸어 생활하였다. 남들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생산직 직원이라고, 여러 편견에 갇혀 도전을 포기했다면 다가가지 못했을 꿈이다.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 계속 도전하라. 자기 꿈을 선명하게 간직하고, 기회를 도전으로 응하는 힘과 정신이 있는 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배움이나 꿈처럼 더 가치 있는 것을 택했고 그 결과에 늘 만족했다. 그래서일까? 수십 년의 인생을 통틀어 이 확신만큼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럼 지금 나는 어떤 비전을 품고 살고 있는가?

나의 비전 : ‘기업 및 개인의 행복한 성공을 돕는 기업교육 전문가 ’
나의 각오 : 기업교육 전문가 최 갑 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자세로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긍정 사고 : 기업교육 전문가 최 갑 도는 1%의 가능성을 100%로 바꾸고
                 초 긍정 마인드로 어떤 고난과 고통도 반드시 극복해낸다.
자기 암시 : 미래는 미래가 있다고 믿고 준비하는 자에게만 다가온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나는 용기 있다! 나는 성공 한다! 나는 행복하다!

기업교육을 담당한지 벌써 삼십여 년이 흐르고 보니 꿈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꿈은 최고의 도전과제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란 아직 도전하지 않은 꿈일 뿐이라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마음만 갖는다면 설사 어떤 고난에 처한다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