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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복지의 새 패러다임과 저출산ㆍ고령화시대 우리의 대응 - 진수희 석좌교수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대한민국 사회의 화두로 부상한 복지이슈가 이제 정치ㆍ사회ㆍ경제 분야 전반의 핵심영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보다 앞서 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소위 복지 선진국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회발전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산업화 단계를 거쳐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어서면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와 기대가 자연스레 커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최근의 세계 최저수준 출산율과 가파른 고령화 속도, 그리고 양극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복지욕구의 분출은 필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복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더불어 그 복지를 확대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가능한 복지를 할 수 있겠는지, 국가의 한정된 재정으로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를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복지정책의 방법론을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어야 할 때다.

이 같은 복지 논쟁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2010년 여름부터 약 13개월간 나는 보건복지부의 장관으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흘에 한번 꼴로 다양한 복지현장을 찾았다. 복지재정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각종 제도적인 틀이 갖추어져 보다 촘촘하게 보완되고 있는 데도, 여전히 현장에서 느끼는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는 정부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고, 투입하는 재정에 비교해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이러한 때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수행하게 된 나는 하루하루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없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들여다보았으며, 수많은 복지현장들을 찾아 그곳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열심히 연구했다.

급증하는 복지욕구에 부응하는 한편, 양극화를 완화하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가능하고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 모델을 찾아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성장과 복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 없는 복지는 허구요, 복지 없는 성장은 정의롭지 못하다. 최근 들어 성장이냐 복지냐의 이분법이 더 이상 주된 논쟁이 되지 않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나, 여전히 어느쪽(성장→복지, 복지→성장) 과정에 방점을 두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차이일 뿐이고 얼마든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으로 커진 파이를 복지를 통해 공정하게 분배함으로서 사회통합을 실현하고, 통합된 국민의 힘이 또 다른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는, 이른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이 우리의 과제다.

성장이 복지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복지가 성장을 견인해 가는 이 선순환과정에서 크게 2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해 키워놓은 성장의 과실을 형평성 있고 공정한 분배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는 확신, 즉 분배의 정의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을 통해 키운 과실을 가져가는 것은 항상 기득권층이라는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로 발생하는 다양한 복지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복지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수반될 세금, 보험금 등 각종 사회적 부담이 결국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 국민적 동의의 과정이 생략된 채 도덕적 당위성만으로 복지제도를 집행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복지비용의 부담자와 수혜자간의 합의와 동의가 담보될 수 없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될 갈등의 사회적 비용들로 인해 복지제도 뿐 아니라 국가의 지속가능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결국 양자의 선순환은 불가능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앞서 다양한 복지형태를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 이를테면 복지선진국이라 불리는 스웨덴과 독일, 그리고 최근의 재정파산 사태를 겪고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또는 서구와는 다른 역사적ㆍ문화적 토양을 갖고 있는 미국식 복지제도 등과 같이, 흔히 ‘전가의 보도’로 인식되는 각각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복지정책의 방향과 구현방식을 수립하여 ‘한국형 복지’ 모델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데 참 고가 되어줄 것이다. 

양극화시대에는 서민복지가 바른 해법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양극화문제는 글로벌 이슈가 되었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것에 일정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을 복원하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양극화 시대에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논란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양극화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몰라서 그리 한다면 무지의 소치이고, 알면서도 그리한다면 부도덕한 것이다.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려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조금만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는 서민층에게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 보편복지를 통해 절실하지 않거나 절박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돌아갈 재원이 있다면 그마저도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착실하게 써서 이들이 빈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주의 하에서 국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고, 우리 헌법에도 국가는 국민의 복지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시급하고 꼭 필요한 부분부터 투입하게 되는 것이 순리이다. 복지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당장 정부지원이 필요한 계층부터 차곡차곡 복지혜택을 확대하여 보편복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경제 사회전반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모든 계층에 복지를 확대하기 보다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집중적으로 강화함으로서 이들이 중산층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특히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것은 재정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평등과 재분배 등 복지정책의 확대는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중산층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복지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빚을 지지 않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서 모두가 변해야 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양극화 시대에는 서민복지가 바른 해법이다.

영유아보육 재정은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투자

강력한 산아제한 캠페인 구호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대한민국은 어느 새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고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가 되었다.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고령화의 속도는 출산율만 어느 정도 회복되면 감당해 낼 수 있다. 결국은 출산율이 문제인 것이다. 저출산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데 드는 비용부담과 대부분 맞벌이를 원하는 젊은 부부들은 믿고 맡길 데가 없다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또한 맞벌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는 기업문화와 고용관행이 뿌리내리는 일이다. 

이제까지 육아지원 재정은 복지의 영역에 포함시켜 왔다. 이제 이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일을 개별가정의 가족구성원을 충원하는 의미를 넘어서 차세대 사회구성원을 충원하는 일로 접근해야 한다. 육아와 관련된 재정을 소극적인 복지재정의 개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성장동력을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생애 초기 육아지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다른 시기에 비해 재정 투입대비 인적자원 투자효과가 가장 크고, 사회·국가적으로 양극화 해소와 범죄율 감소에 기초한 복지비용 감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공격적인 재정투입을 통해, 새로 가정을 형성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육아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주고, 보육이나 유아교육관련 시설과 서비스의 질을 파격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저출산의 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고 국가의 존립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기업들이 당장의 손해에 연연하지 말고 저출산의 문제를 바로 자신들의 문제(생산인력부족, 매출감소 등)로 인식하고 출산친화적이고 가족친화적인 고용관행과 직장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미래 인적자본 확충을 위한 투자야말로 개인과 가정에게 가장 생산적이고 실효성있는 복지이자, 국가와 사회에는 미래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정부가 제 아무리 복지재정을 확대한다고 해도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나눔문화의 확산을 통해 민간의 자발적인 나눔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정부예산 제약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에서 벗어나 국민의 마음을 한데로 모아 사회통합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한 세제개편 등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고, 최고 부유층의 개인기부도 점차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부의 형태도 물질적 나눔과 시간을 나누는 자원봉사, 재능나눔과 지식나눔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머지않아 ‘나눔’의 씨앗이 방방곡곡 흩어져 우리 사회에 한 트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보듬어 주는 전 세계에 모범이 되는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각지대를 메워나가며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나와 미래의 후손까지 누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복지는 나눔문화 확산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책임을 공유함으로써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